군자의 사귐은 물 같이 담담하다? 물도 필요없다!
만족함을 알면 항상 즐겁다.(사진=포토리아)
중국의 역사를 논할 때 '군자'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다. 군자의 품성과 덕, 사랑과 미움, ‘군자’는 역사가 잊지 않는다.
춘추시대에 거대 제후국이었던 진나라에는 진경공, 진려공, 진도공, 진평공, 이렇게 네 군주를 모신 기해(祁奚)라는 사조원로(四朝元老)가 있었다. 기해는 관직에서 중군위(中軍尉)와 대부(大夫)를 지냈다. 진나라에는 육군(六軍)이 있었는데 중군위는 육군경(六軍卿) 다음으로 군대에서 최고대부에 속했다. 당시 나라는 군정일체로 장수(將帥)를 하면서 경신(卿臣)도 했기에 기해의 지위는 가장 높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명망만큼은 매우 높았다.
원수 또는 아들
진평공이 재위할 때 진나라 남양(南陽)에 현령(縣令) 자리가 하나 비자, 진도공이 기해에게 적당한 사람을 천거해달라고 하였다.
기해는 “이 자리에는 해호(解狐)가 적합합니다”라고 말했다.
진평공이 깜짝 놀라며 “해호는 그대와 원수지간이 아니냐? 어째서 그를 천거하느냐?”라고 물었다.
기해는 “주공은 제게 일의 적임자를 물으셨지, 제 원수가 누구인지 물으신 게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진평공은 그 말을 듣고 이치에 맞다 여기고는 “좋다”면서 해호를 임명했다.
해호는 부임해서 남양을 질서정연하게 잘 다스렸고, 남양성 백성은 모두 새로 부임한 현령을 칭찬했다.
얼마 뒤, 진평공은 또 기해에게 “나라에 위관(尉官) 자리 하나가 비었는데, 마땅한 사람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기해는 “기오(祁午)가 마땅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진평공은 놀라면서 기해에게 물었다. “기오는 그대의 아들이 아닌가?”
기해는 “주공께서는 누가 위관에 적합한지를 물으셨지, 제 아들이 누구인지 물으신 건 아니잖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진평공은 이번에도 “아주 좋구나”라고 말하며 기오를 임명했고, 역시나 기오는 그 관직의 적임자였다.
기해는 나이가 많이 들어 얼마 후 공직에서 물러나, 자신의 봉지(封地)에서 노년을 보냈다.
기해는 너무 늦어 혹시나 숙향을 살리지 못할까봐 걱정하며 가장 빠른 마차를 타고 당시 진나라의 국정 집정관인 범선자를 찾아뵈었다. 사진은 청나라 진사관의 <성제명왕선단록(聖帝明王善端錄)(하상주로 추정) 우여익직(禹與益稷)> 일부분 |
준마로 숙향을 구하다
이 후 진나라에 일이 하나 터졌으니, 몇몇 대신간의 내분이 유혈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양설(羊舌)가문도 거기에 휘말려 싸움에 가담하지 않았던 숙향(叔向)은 동생이 연루됐다는 이유로 연좌되어 자유를 잃고, 자신의 집에 감금된 채 처벌만 기다리게 되었다.
숙향은 당시 유명한 현인이자 국가중신이었는데, 그가 무고하게 연좌되었기에 많은 사람은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 중 진평공의 총애를 받던 낙왕부(樂王鮒)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낙왕부가 숙향을 직접 찾아와 숙향이 풀려나도록 도와주겠다는 뜻을 보였다.
그러나 숙향은 낙왕부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지어 그의 말을 끊어버리면서 감사를 표하지도 않고 매우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숙향이 눈치 없이 군다고 질책했지만, 숙향은 그들에게 기해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해가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과연 숙향의 말은 맞았다. 기해는 이 일을 알고 나서, 집안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소인배가 득세하는 것을 보고도 높은 사람에게 직언하지 않는 것은 선(善)하지 않은 것이고, 군자에게 우환이 생겼는데 그를 구하지 않는 것도 선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해는 너무 늦어 혹시나 숙향을 살리지 못할까 걱정하며 가장 빠른 마차를 타고는 당시 진나라의 국정집정관인 범선자(範宣子)를 찾아뵈었다.
기해는 고대 성왕을 예로 들며 “순(舜) 임금은 물을 다스리는 데 실패한 곤(鯀)을 죽였지만, 곤의 아들 대우(大禹)가 공을 세우지 않았습니까? 주문왕(周文王)의 아들 채숙(蔡叔), 관숙(管叔)도 문제를 일으켜 벌을 받았지만 그들의 후손은 계속해서 중용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며 최선을 다해 도리에 맞게 숙향을 변론했다. 범선자는 설득당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리하여 숙향은 위험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았다.
진나라 고개(顧凱)의 <열녀인지도(列女仁智圖) > 숙향 모자 부분. 가운데 사람이 숙향이다. |
군자지교
숙향은 기해가 자신을 구해줄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숙향은 “기대부외거불피구(祁大夫外舉不棄仇), 내거불피친(內舉不失親), 기독유아호(其獨遺我乎)”라고 하였는데, 이는 ‘기대부는 인재를 천거함에 원수라 해도 꺼리지 않고 친인척이라 해도 피하지 않는데, 유독 자신만 내버려 두겠는가?'라는 뜻이다.
또 숙향은 말했다. “유각덕행(有覺德行) 사국순지(四國順之)." '정직하고 덕이 있는 사람은 온 천하가 그를 따른다'는 뜻이다.
보통 기해와 숙향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만, 이 이후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또 있다.
숙향을 살린 기해는 숙향을 위로해주지도, 생색을 내지도 않고 곧바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숙향도 자신의 신분을 회복하고는 곧바로 입궁해 진평공을 알현하였다.
구해준 사람이나 구함을 받은 사람이나 둘 다 아무런 표현도 없었다. 기해는 자신이 숙향에게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숙향도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군자의 사귐은 원래 물과 같이 담담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두 사람 사이에는 물조차 있을 수 없었다.
출처: h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5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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