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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50살이 넘으면 왜 쇠약해질까? 고대 의학이 밝힌 '절제'의 효과

50살이 넘으면 왜 쇠약해질까? 고대 의학이 밝힌 '절제'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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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인들은 육욕(肉慾)을 절제하지 않으면 덕을 잃고 몸을 망치게 된다는 이치를 알았다.


전통 도덕에서는 욕망을 절제하는 미덕을 가르쳤다. 특히 수행자에게는 계율에 따라 절대 금욕을 요구했다. 수행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도 중국의 유가와 서양의 십계명에서 볼 수 있듯 외도를 금하고 있다. 전통 도가에서도 사람의 명(命, 운명이나 수명)을 닦는 수련의 관점에서, 무절제한 부부생활을 경계하라고 한다. 이런 도덕률은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전통적 가르침이다.


《황제내경(黄帝内经)》, "사람은 왜 50세만 되어도 쇠약해지는가?"


황제내경은, 황제와 명의이자 신선인 기백이 양생을 주제로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그중 한 일화를 소개한다.


황제가 물었다. “내가 듣기로 상고시대 사람은 모두 백 살이 넘어도 움직임이 쇠약해지지 않았다는데, 요즘 사람은 50세만 되어도 동작이 쇠약해진다. 이건 시대가 변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사람이 도(道)를 벗어났기 때문인가?”


기백(岐伯)이 대답했다.


“도를 알았던 상고시대 사람은 음양을 본받고, 수리(數理)에 부합하고, 음식을 절제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부부생활을 아무렇게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몸에 집중할 수 있었고, 천수를 누린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날의 사람은 술을 물처럼 마시고, 소란을 피워도 정상이라 여기고, 육욕을 절제하지 않고 정기를 모두 쏟으며 순진함이란 없습니다. 또, 정기를 충실하게 보전할 줄 모르고, 마음을 단속할 줄 모르며, 통쾌하게 배출할 생각만 하고, 도리를 거스르고, 규칙적으로 생활하지 않기에 50세만 되어도 쇠약해집니다.


... 상고(上古)시대 사람들은 욕망은 적었지만, 뜻은 높았고, 마음이 안정돼 두려움이 없었고, 신체 노동을 하면서도 정신이 해이해지지 않았으며, 마음이 평온하고 성격이 온순해 모든 것에 만족했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옷을 편하게 입고, 즐겁게 생활하면서 남과 비교하지 않아 사람마다 순박했습니다. 이처럼 도덕적으로 생활해 질병의 위험이 없었기 때문에 상고시대 사람들은 모두 백 살이 넘어도 동작이 쇠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고대 동양 의학자는 육욕을 절제하지 않으면 도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고,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버리는 태도만이 도에 부합한다고 여겼다.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색정과 물욕이 넘쳐 마치 사람이 '성(性)' 쾌락을 추구하지 않으면 일생을 헛되이 산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육욕은 추구할수록 욕망이 커져서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괴로운 시절을 보낸 사람이 작은 것에서도 쉽게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정결한 사람이 결혼생활의 행복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비위론(脾胃論)》의 이동원,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욕망보다 중요하다.”


비위론이란 중국 금나라의 이동원(이고, 李杲)이 편찬해 13세기경 간행한 의서 3권이다. 이번엔 이동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동원은 “명예와 신체 중에서 어느 것을 더 포기하기 어려운가? 신체와 이익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며 묻는다.


“가령 한 사람이 수나라 제후를 모방해 금구슬을 쏴서 높은 곳에 있는 쇠박새를 맞히려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를 비웃을 것이다. '왜 그렇게 하찮은 것을 위해 그런 귀중한 것을 잃으려 하느냐!'고. 나는 65세의 몸으로 시력과 청력을 대부분 잃었고, 온몸의 맥박이 어지럽고, 심력도 잃었다. 몸의 맥은 제멋대로 뛰는 것 같고, 눈을 감으면 혼이 빠져나가는 듯하다. 나는 안색이 예전보다 어둡고 먹는 것이 예전만 못한 데다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까지 나의 병세를 악화시킨다. 현재 나에게 남은 약간의 건강이 어찌 수나라 제후의 금구슬보다 귀하지 않겠는가?


... 만약 환자가 소박한 것에 만족하고, 생각과 욕망이 적고, 적게 말해 덕을 기르고, 함부로 과로하지 않으면서 몸을 보양하고, 겸허하게 생각을 자제해 원기를 유지하고, 생사와 득실을 가볍게 보고, 정해진 운명에 만족한다면 인체의 원기가 조화를 이루어 병마가 몸 둘 곳이 없어지는데, 병세가 어떻게 심해질 수 있겠는가? 만약 사람이 이런 심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곧 양생의 길에서 멀리 있지 않으며, 진정한 즐거움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정심이 많았던 이동원은 자선으로 명성을 얻은 후에 진료가 몹시 바빠져 심신이 쇠약해졌다. 그는 자신의 실제 교훈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신체 건강에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건강한 신체가 있어야만 일체가 있다.


명예와 이익을 위해 목숨을 다해 일한다면 오히려 그것을 누릴 터전을 잃어버리는 격이다. 중병에 걸린 사람은 이를 분명히 알고 있다. 이동원은 "만약 자신이 인간사에 적게 신경 쓰고, 적게 말하고, 적게 일했다면, 자신의 병이 이렇게 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환자들이 병이 낫기 바란다면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망을 제거하며 생사와 득실을 가볍게 보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동원도 그렇게 세월을 보냄으로써 의사로서 자신의 신체를 망쳤다. 하지만 그는 환자에게 관심을 쏟다 자신을 망친 것이지 그런 이치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사람은 육욕을 절제해야 하는가? 바른 부부생활에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필요한가? 출가인은 반드시 금욕해야 하나? 이런 문제에 대해 고대인은 아주 간단하게 답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미 욕망의 화신이 된 현대인들은 이를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따라서 독자들이 욕망을 절제해야 하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고대인과 수련인의 심리상태를 이해하기 바란다.

 


출처: h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6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