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 술 좋아하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보냈던 다산초당(한국관광공사)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내는 ‘술 마시는 법도’라는 글이 온라인에서 전해지고 있다.
아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그의 인품이 담긴 다산의 글을 간략히 소개해 본다.
* * *
네 형이 왔을 때 시험삼아 술 한잔을 마시게 했더니 취하지 않더구나.
그래서 동생인 너의 주량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너는 네 형보다 배(倍)도 넘는다 하더구나.
어찌 글공부에는 이 아비의 버릇을 이을 줄 모르고 주량만 아비를 훨씬 넘어서는 거냐?
이거야말로 좋지 못한 소식이구나.
네 외할아버지 절도사공(節度使公)은 술 일곱잔을 거뜬히 마셔도 취하지 않으셨지만 평생동안 술을 입에 가까이하지 않으셨다.
벼슬을 그만두신 후 늘그막에 세월을 보내실 때에야 비로소 수십방울 정도 들어갈 조그만 술잔을 하나 만들어놓고 입술만 적시곤 하셨다.
나는 아직까지 술을 많이 마신 적이 없고 내 주량을 알지도 못한다.
벼슬하기 전에 중희당(重熙堂)에서 세 번 일등을 했던 덕택으로 소주를 옥필통(玉筆筒)에 가득 따라서 하사하시기에 사양하지 못하고 다 마시면서 혼잦말로 “나는 오늘 죽었구나” 라고 했는데 그렇게 심하게 취하지 않았다.
또 춘당대(春塘臺)에서 임금을 모시고 공부하던 중 맛난 술을 큰 사발로 하나씩 하사받았는데, 그때 여러 학사(學士)들이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정신을 잃고 혹 남쪽을 향해 절을 하고 더러는 자리에 누워 뒹굴고 하였지만, 나는 내가 읽을 책을 다 읽어 내 차례를 마칠 때까지 조금도 착오없게 하였다.
다만 퇴근 하였을 때 조금 취기가 있었을 뿐이다.
그랬지만 너희들은 지난날 내가 술을 마실 때 반잔 이상 마시는 걸 본 적이 있느냐?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 물을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에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다 탁 털어넣는데 그들이 무슨 맛을 알겟느냐?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해대며 잠에 곯아떨어져버린다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
요컨대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暴死)하기 쉽다.
주독(酒毒)이 오장육부에 배어들어가 하루아침에 썩어 물크러지면 온몸이 무너지고 만다.
이것이야말로 크게 두려워할 일이다.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시키거나 흉패한 행동은 모두 술 때문이었기에 옛날에는 뿔이 달린 술잔을 만들어 조금씩 마시게 하였고,
더러 그러한 술잔을 쓰면서도 절주(節酒)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자께서는 “뿔 달린 술잔이 뿔 달린 술잔 구실을 못하면 뿔 달린 술잔이라 하겠는가!” 라고 탄식하셨다.
너처럼 배우지 못하고 식견이 없는 폐족 집안의 사람이 못된 술주정뱅이라는 이름까지 가진다면 앞으로 어떤 등급의 사람이 되겠느냐?
조심하여 절대로 입에 가까이하지 말거라.
제발 이 천애(天涯)의 애처로운 아비이 말을 따르도록 해라.
술로 인한 병은 등에서도 나고 뇌에서도 나며 치루(痔漏)가 되기도 하고 황달이 되어 별별 기괴한 병이 발생하니, 한번 병이 나면 백가지 약도 효험이 없다.
너에게 바라노니 입에서 딱 끊고 마시지 말도록 해라.
애비의 말를 명심하거라.
– 다산초당에서 애비 보냄.
[다산 정약용이 18년 유배생활 중 둘째 아들 학유에게 보낸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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