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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현대판 '효녀 심청이'...7살부터 쓰레기 모아 아버지 봉양

현대판 '효녀 심청이'...7살부터 쓰레기 모아 아버지 봉양


    사진=DKN.TV


가정에 고난이 닥쳤을 때 개인의 행복을 위해 가족을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탕(satang)은 그렇지 않았다.


7살 꼬마의 선택


사탕(satang)의 집안은 비교적 부유했다. 건설회사 시공을 하는 아버지 덕에 사탕의 가족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평온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공사현장 건물 3층에서 추락해 장애인이 됐다.

사고이후 사탕의 집안경제는 급격히 기울어졌다. 아버지 대신 모든 가정경제를 이끌어야 하는 어머니의 책임은 막중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사고이후 2~3개월 만에 사탕과 동생을 데리고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어린 친구이자 딸인 '사탕'(Photo : Buriram Times)

비록 사탕의 나이는 7살에 불과했지만 현실에 대해 어느 정도 판단은 할 수 있었다. 사탕은 ‘나마저 아빠 곁을 떠나면 누가 아빠를 돌보아 드릴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만 편하자고 아버지를 버리고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 곁에 남기로 했다.


5년간 아버지의 생계를 책임지다


사탕이 겪었을 어려움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7살 소녀가장 사탕은, 경제능력을 상실한 아버지를 책임지느라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했는데, 5년 뒤에야 사탕의 사연이 태국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동안 사탕이 걸어 온 삶은 험난했다. 당장 살기위해 할 수 있는 게 빈병 모으기였다. 대도시 쓰레기장을 뒤져 빈병을 수집해야 했고, 부족한 돈을 벌기 위해 시장에 가서 채소도 팔았다. 그렇게 매일 50~100바트(약1700~3300원)를 벌면 식량을 사기엔 충분했지만, 아버지의 기저귀까지 사려면 온종일 쓰레기장에 있을 때도 많았다. 그래도 사탕은 ‘돈을 버니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쓰레기 수거 (사진=hilight.kapook)

일반적으로 일곱살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놀고 응석부리기에 딱 좋은 나이다. 하지만 사탕은 매 시간마다 쌀값 걱정을 하면서 살아야했다.


그런데도 전혀 불평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겪는 고통을 생각하면 자신의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어린 사탕이 힘겨운 생활고를 견디는 모습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그럴 때마다 사탕은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도리어 아버지를 위로했다. 아버지가 울거나 약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채소장사를 하다 (사진=hilight.kapook)

부모가 자식을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위해 사탕처럼 헌신하기란 쉽지 않다. 옛이야기에서나 등장할 만한 사탕의 사연은 5년 동안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다가 뒤늦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인연이 시작되다


포라멧 미소포프(Poramet Misomphop)는 사탕의 후원자이다. 그는 샤망 프라칸(Samang Prakan) 지방의 방포(Bangpoo) 지역에 사는 사탕을 찾아왔다. 그가 사탕 부녀가 사는 임시거처에 들렀을 때 악취가 풍겼다.


그와의 첫 만남은 사탕의 아버지에겐 의미가 컸다. 오랜 시간 방치된 채 살다가 누군가 아버지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미소포프씨는 그들 부녀에게 정신적 후원만 한 게 아니라 생필품도 공급하기 시작했다.


사탕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린 포라멧 미소포프 (사진 제공 : Buriram Times)

미소포트 씨는 사탕의 가족이 도움받길 기대하면서 부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또, 사탕이 학교 다닐 수 있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탕이 살아온 이야기는, 특히 아버지를 끔찍이 생각하며 헌신적으로 살아 온 사탕의 이야기는 태국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리하여 사탕의 소식이 알려진지 5일 만에 100만 바트(약 330만원)의 성금이 모였다.



출처: h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4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