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사건] 세계 10대 미스터리 上
지금까지의 통념으로는 남극대륙이 현재처럼 만년설로 뒤덮인 것은 수백만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꼼꼼히 조사해보면 이 통념은 많은 결함을 지니고 있다. 1513년 해군 제독 피리 레이스가 그린 세계지도에는 남극대륙의 퀸 모드 랜드 지역의 해안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는 고대의 많은 지도를 보고 이 지도를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남극대륙이 발견된 것은 1818년으로, 이 지도가 그려진 뒤 300년도 더 흐른 뒤였다.
놀라운 것은 남극이 아직 얼음으로 뒤덮이기 전의 해안이라는 점이다. 1949년 스웨덴과 영국의 남극대륙 조사단이 만년설 위에서 실시한 지진파 측정결과, 퀸 모드 랜드 지방이 얼음으로 뒤덮이기 전의 모습과 지도의 묘사가 일치했다.
지질학적 증거에 따르면 얼음이 없는 상태에서 이 지역을 조사하는 것은 기원전 4000년 전에나 가능했다. 만약 수백만 년 전에 이 지도가 작성되었다고 하면 누가 이와 같은 지도를 그릴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면 기원전 200만 년에 이 지도가 작성되었다고 하면 인류가 탄생하기 전의 일이 되고 만다. 또한 남극대륙이 얼음으로 뒤덮이기 시작한 것은 6000년 전으로, 그때에 누가 지도작성과 같은 복잡한 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었겠는가가 의문이다. 6000년 전이라면 현재의 역사가들이 인정하고 있는 최초의 본격적인 문명이 발달하기 이전이다.
이러한 일들, 우리의 상식의 범위 바깥에 있고 역사인식을 벗어나 있는 일들이 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범위를 벗어난 듯 보이는 세계의 불가사의들에 대해 누군가는 조작된 것이라거나 미신이라며 부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꾸준히 미지의 영역을 연구하고 또 밝혀내고 있다. 세계의 10대 미스터리를 통해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세계가 수많은 신비로 뒤덮여 있음을 알아보고자 한다.
1. 기독교 성체의 수의(屍布)
1898년 5월 28일 피아(Secondo Pia)가 촬영한 토리노 수의의 윗부분. 이 사진은 후에 천주교 견진
성사 중 ‘예수님 용모’의 일부분이 됐다. (사진=위키백과)
토리노 수의의 논란은 이탈리아 사진가 세콘도 피아가 왕의 허락으로 수의의 사진을 촬영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 수의의 형상이 너무 희미해서 세콘도 피아는 실망했지만 그가 촬영한 원판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토리노 수의의 형상은 예수가 죽을 당시의 묘사와 대부분 일치하였다. 예수가 가시면류관을 쓰고 채찍으로 얻어맞고, 십자가를 매고 갔으며, 십자가에 손목이 못 박혔던 상황과 일치한다.
어떤 이들은 이 형상이 누군가에 의해 그려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VP-8 화상분석기의 분석 결과는 토리노 수의는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의 얼굴과 몸이 찍힌 3차원 영상이라는 걸 보여준다.
수의의 얼굴 부분은 3차원 특성을 가진 이미지로 분석되지만, 사람이 그린 그림은 2차원의 평면으로 분석된다. 입체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사람 손으로 그려진 것은, 어떠한 그림이라도 위처럼 2차원의 평면으로 분석된다.
2. 마리 셀레스트호의 미스터리
1861년 무명화가가 그린 마리셀레스트호. (사진=위키백과)
마리 셀레스트호는 쌍돛대 중형 범선(길이 31m, 무게 281t)인 브리간틴(brigantine)으로 1872년 대서양 지브롤터(Gibraltar)를 향하여 전속력으로 항해하던 무인 선박 상태로 발견되었다. 승무원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론들이 오가며 많은 이야기들을 낳았고, 마리 셀레스트호는 전형적인 유령선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1872년 11월 5일 선장 밴자민 브릭스(Benjamin Briggs)의 지휘 하에 공업용 알코올을 실은 마리 셀레스트호는 뉴욕(New York) 스태튼 섬(Staten Island)을 출항해 이탈리아 제노바(Genoa)로 가려 했다. 선장과 7명의 선원 외 또 선장의 부인과 2살 되는 딸까지 모두 10명이 탔다.
한 달 후인 12월 4일 마리 셀레스트호는 지브롤터의 서쪽 950km 지점의 아조레스 제도 부근에서 셀레스트호를 뒤따르던 데이 그라시호의 선장 무어하우수(David Reed Morehouse)에 의해 발견됐다. 돛은 펼쳐져 있었으나 항해 모습이 매우 이상한 셀레스트호를 보며 무어하우수 선장은 선원들을 시켜 배를 조사하도록 했다.
당시 배의 상황이 대체로 양호했다. 배에 있는 1701통 알코올은 그대로 있었고 배에는 6개월의 보급과 식량이 있었다. 다툼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것도 빠진 것이 없고, 배의 부품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선장의 항해 일기 외 배에 있는 모든 종이는 보이지 않았다. 항해 일기에 기재된 마지막 날짜는 11월 24일이다. 10일 동안 약 1230km를 표류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결국 마리 셀레스트호의 승무원들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들의 운명은 미지로 묻히게 되었다. 마리 셀레스트호는 이후 12년 동안 여러 선주들을 거치며 사용되었다고 한다.
3. 타오스의 소리
타오스 주민과 방문객들은 사막의 일종 신비하고 미약한 저주파 소리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위키백과)
미국 뉴멕시코 주에 있는 카운티 타오스(Taos)의 일부 주민과 방문객들은 몇 년간 사막에서 들려오는 일종 신비하고 미약한 저주파 소리에 시달리고 있다. 그 소리가 마치 모터소리, 냉장고 소리,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 등 갖가지 소음으로 들렸다고 한다. 이상한 것은 타오스의 2% 주민만 이런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리로 인한 불면증 및 현기증, 두통, 불안증상 등 다양한 신경과민으로 주민들은 고통을 겪었는데, 1977년 당시 8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신기한 것은 일반적인 소리 측정 방법으로는 이 소음을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주 낮은 가청음역대의 소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기괴한 소리는 발생된 이후 수십 년간 그 원인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도 타오스 마을에서는 기괴한 소리가 계속되고 있으며, 이 소리는 점차 북아메리카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과연 타오스 마을에서 발생되고 있는 기괴한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4. 블랙 달리아 사건
1943년 9월 23일의 엘리자베스 쇼트. (사진=위키백과)
1947년 1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중심주택구 노턴 거리의 무성한 풀밭에서 22세 백인 여성 엘리자베스 쇼트(Elizabeth Short)가 허리가 예리하게 잘리고, 여려 군데 상처가 있는 나체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조사 결과 피해자의 온 몸은 멍이 들어 있었고, 칼 같은 예리한 도구로 시신의 허리를 잘랐다고 보았다. 그녀가 죽기 전 오랜 시간 참혹하게 고통 받았음은 의심할 바 없었다.
피해자 엘리자베스는 당시 톱스타였던 디아나를 좋아해 그녀처럼 검은색 옷을 즐겨 입고 달리아 꽃으로 장식하는 걸 좋아해 블랙달라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 사건은 대대적인 수사를 위해 500명이 넘는 대규모의 인력을 동원하였고, 사건이 특이하고 복잡하여 그들은 엘리자베스 쇼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용의자로 지목, 약 3000명의 사람들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아직까지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지 못한 채 결국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5. 생 제르망 백작
1873년 토마스(Nicolas Thomas)가 듀페 후작부인(Marquise d'Urfe)이 가지고 있는 한 폭의 초상화를
바탕으로 조각한 생 제르망 백작의 조각상. (사진=위키백과)
생 제르망 백작(The Count of St Germain,1710 ~ 1784년)은 역사상 매우 신비한 인물이다. 그는 모든 언어를 이해하고 모든 학문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회화나 음악적 재능도 범상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연금술을 보여주었고 일부 마술 기능도 보여주었다고 전했다. 그는 ‘괴인물’로 알려졌으며 아무도 그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그가 첫 번째로 생 제르망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기록은 1710년이다. 그 때 그는 베니스에 있었다고 한다. 다른 기록은 1743년에 런던, 1745년은 에든버러에 있었다고 한다. 이때 그는 루소를 알았다. 그리고 1746년에 불현듯 사라졌다.
1758년 그는 다시 베르사유로 돌아왔다. 이 시기 그는 일부 초상화를 남겼다. 그는 스스로 염색 제조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루이15세는 그를 샹보르성에 머물게 하였다. 파리에서 그는 다이아몬드를 선물로 주곤 했는데, 이탈리아의 모험가 지아코모 카사노바(Giacomo Girolamo Casanova)는 생 제르망이 은을 금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생 제르망은 어떤 땐 자신이 사실 이미 몇백 살이라는 걸 암시하기도 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한다. 1835년엔 파리에, 1867년엔 밀라노에, 나폴레옹 전쟁 시기엔 이집트에 있었다고 한다. 신지학(Theosophy)자 애니 베전트 (Annie Besant)는 1896년에 백작을 만났다고 했고 신지학자 리드비터(C. W. Leadbeater)는 1926년에 로마에서 백작을 만났다고 말했다.
출처: h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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