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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수가

中 고위관료와 장기이식 전문가 밀착관계 폭로(상)

中 고위관료와 장기이식 전문가 밀착관계 폭로(상)

"의사들, '신선한' 장기 상납해 고위층 환심 얻었다"


    미국으로 도피한 중국 부호 궈원구이는 장쩌민의 아들 장몐헝이 신장 수술을 세 차례 받았으며, 그로 인한 장기 

    공급으로  5명이 살해됐고, 멍젠주(孟建柱) 전 정법위 서기는 어머니의 신장 이식을 위해 교도소 수감자를 죽여 

    장기를 확보했다고 폭로했다. (대기원 자료실)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法輪功) 수련자의 장기를 강제 적출한 만행이 국제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폭로되고 있고, 황제푸(黃潔夫) 전(前) 중국 위생부장은 2015년부터 사형수의 장기 적출을 전면 금지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중국의 실제 장기 이식 건수는 발표된 장기 기증수를 크게 넘어서고 있다. 이런 장기 출처에 관한 의혹 제기에도, 중국 당국은 여전히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중국의 장기이식 산업은 공산당 정권 수립 시기부터 시작됐다. 최초의 이식 전문의는 공산당 고위층에게 각종 건강 보건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특권을 누렸는데, 그중에는 고위층의 '부실한' 장기를 '신선한' 장기로 교체해주는 기술이 성행했기 때문에 특히 군에서 장기 이식술이 발전했다. 중국 공산당은 군의관을 이용해 민간 병원에까지 장기 이식 교육과 보급을 추진하여 특유의 장기이식 체계를 만들었다.


문화대혁명 전후 장기이식 사례는 공개된 경우가 매우 적었으나, 일부 노출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77년 10월 301병원 비뇨기 외과 의사였던 리옌탕(李炎唐)은 신장 이식 수술을 진행했을 당시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신장을 적출했다. 신장 적출 전문 차량은 경찰차가 길을 터주고 통신부대의 도움을 받아 적출 지점에서 수술실까지 장기를 직접 운반했다고 한다. 적출한 간이 사용 가능하면 즉시 수술을 통보하고, 환자는 수술 준비를 하는 등 일련의 과정은 철두철미했다. 1978년에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중하이위안(鐘海源) 씨가 신장을 적출당해 고위간부의 자제에게 이식됐다.


이처럼 문화대혁명 때부터 군대 시스템을 이용해 장기 이식이 진행하는, 특히 생체(살아있는 사람) 장기를 사용해 장기이식의 품질을 높이는 방식이 중국에서 진행한 장기이식의 특징이다. 공산당의 이러한 비윤리적인 장기이식 행위는 악행의 핵심이며, 그 배후에 가려진 흑막은 상상을 초월한다. 수많은 고위 관료들이 장기이식 전문가와 '신상품'을 총애한다는 사실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중국 고위관료, 이식 전문가와 수차례 접견


우멍차오(吳孟超)

올해 95세를 맞은, 해군병원 부속 동방간담외과병원(東方肝膽外科醫院) 원장이자 푸젠(福建) 의과대 명예 학장인 우멍차오(吳孟超)는 ‘상하이(上海) 의학발전 종신성과상(終身成就獎)’을 수여받았다.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등 고위 관료가 그를 예방했고 이미 고인이 된 쉬차이허우(徐才厚) 군사위 부주석은 그를 크게 칭찬했으며, 2012년 그의 ‘선진적 사적(先進事跡)’이 크게 선전되기도 했다. 우멍차오는 장쩌민의 건강을 챙겨준 ‘일등 공신’이었다고 전해진다.


중국 당국 발표에 따르면, 우멍차오는 국내 최초로 간 외과수술을 집도했고, 세계 최초로 중간엽 종양 절제술을 실시했다. 당시 최대 종양 절제, 최연소 간 수술, 수술 후 생존 기간 최장 등 여러 기록들을 세우며 간암의 기초와 임상 연구에 새 장을 열었으며 ‘중국 간 외과의 아버지’로 불렸다.


2012년 2월 우멍차오는 중국 CCTV가 수여하는 ‘2011 중국인을 감동시킨 인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공식 이력에는 ‘간 종양 수술 1만4천여 건을 집도했고 이 중 9300여 건의 간암 절제술 성공률이 98.%에 달한다고 되어 있으며 90세 고령으로 여전히 종양 수술의 일선에서 분투하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그가 말기 간암 치료에 가장 많이 사용한 방법이 ‘간 이식을 통한 병변 간 교체’라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혼자서 1만4천여 건을 집도했다는 것도 미심쩍다. 대체 어디서 적합한 간을 구했단 말인가? 그는 전군(全軍) 장기이식회의 수석 고문으로서 몇몇 병원에서 장기이식 경축대회 축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가 장기의 출처를 몰랐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중국 언론은 또한 우멍차오가 장쩌민이 가장 아끼던 의사였으며 최소 4차례 이상 접견한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2014년 <신기원주간(新紀元周刋)>의 보도에 따르면, 장쩌민은 우멍차오와 매우 특별한 관계였고 의학계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우멍차오가 왔는지 물었다고 한다. 장쩌민이 2011년에 생사가 위태로웠을 때 그의 이식을 집도한 사람도 우멍차오였다.


1999년 7월 장쩌민이 파룬궁을 탄압하고 파룬궁 수련자들의 장기 적출을 산업화, 군사화한 이후, 우멍차오가 이끄는 동방간담외과 연구소는 장기이식 중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장쩌민이 의도한 장기이식 산업화를 성장시켰고 막대한 이윤까지 남겼다. 그로 인해 그는 장쩌민과 쉬차이허우 부주석에게서 여러 차례 표창과 장려를 받았다.


그는 동방간담외과병원에서 이식술을 집도한 것 외에 푸젠의과대학에 우멍차오 간담병원을 설립했고, 상하이에 우멍차오의학센터, 닝보(寧波)병원에는 상하이 우멍차오의학센터 지부를 설치했다. 이 병원들은 모두 장기이식과 관련이 있다. 그 많은 장기는 대체 어디서 공급됐을까?


중국 고위관료, 장기이식 외과 창시자 크게 칭찬


츄파쭈(裘法祖)

우멍차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그의 스승이자 중국 장기이식 외과의 주요 창시자인 츄파쭈(裘法祖)다. 츄파쭈는 뮌헨대학 의과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항일전쟁 후 귀국해 중국 최초의 장기이식 기구인 퉁지(同濟)의과대학 장기이식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정권 수립 후 제자 샤후이성(夏穗生)을 데리고 고위 관료들의 장기 이식을 시행했다. 1993년에 중국과학원 원사에 선출되고 2001년 중국 의학기금회의 ‘의료인 모범 윤리 평생상’을 수상했다.


2004년, 90세 생일을 맞아 당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우관정(吳官正)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 부위원장인 루융샹(路甬祥) 등이 축전을 보냈고, 중앙정치국 위원이자 후베이(湖北)성 위원회 서기였던 위정성(俞正聲)이 연설 중 성(省) 위원회 및 정부를 대표해 츄파쭈의 생일을 축하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 부위원장이었던 우제핑(吳階平) 역시 츄파쭈를 크게 칭찬했고, 후베이성 뤄칭취안(羅清泉) 성장은 명예 증서를 수여하기도 했다.


그가 이 같은 ‘영예’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공산당 고위층의 장기이식 분야에 크게 공헌했기 때문이다.


장몐헝 신장 이식수술 집도의 리레이스 투신 사망


리레이스(黎磊石)

최근, 미국으로 도피한 중국 부호 궈원구이는 암에 걸린 중국 고위관료들이 여전히 멀쩡한 이유를 폭로했다. 그들은 장기 이식을 통해 목숨을 연명했는데, ‘강제 장기적출, 수요에 따른 살인’을 통해 생명을 연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쩌민의 아들 장몐헝은 신장 수술을 세 차례 받았는데, 그로 인한 장기 공급 때문에 5명이 살해됐고, 멍젠주(孟建柱) 전 정법위 서기는 어머니의 신장 이식을 위해 교도소 수감자를 죽여 장기를 확보했다. 베이다팡정(北大方正) 그룹의 전 최고경영자 리유(李友)는 간 이식 제공자만 수십 명을 골라 자신에게 적합한 장기를 구했다. 궈원구이는, 장몐헝과 멍젠주 어머니의 신장 이식을 집도한 의사가 라난징(南京)군구 총병원의 리레이스(黎磊石)라면서 2010년 리레이스가 투신 자살한 배경에 의혹을 제기했다.


리레이스는 중국 신장이식의 창시자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관영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의 직함에는 중국공정원(工程院) 원사, 해방군 신장병연구소 소장, 난징대학 의학원 임상학원 부원장 겸 교수, 국제 유명 신장병 전문가, 중국 신장병 치료 창시자인 위대한 의사 등이 있다. 또 2004년 리레이스가 제자와 함께 진행한 신장이식 수술의 환자와 신장 생존률은 100%였다. 장쩌민 부자의 권위를 생각하면, 장몐헝의 신장이식 수술은 리레이스 말고는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리레이스의 신장이식센터는 이식 건수가 초기 연 10여 건에서 100여 건으로 늘면서 중국내 최대 신장이식센터 중 하나가 됐으며, 2004년에는 연 1000건을 돌파했다. 그가 저술한 <중국 신장이식 편람>은 중국의 많은 신장이식 전문의들이 보는 교과서가 됐다.


그는 고위층에 충성한 댓가로 장쩌민을 면담하는 특혜를 누렸고, 2007년 군부는 '리레이스를 본받자’는 결정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투신 사망에 류팅둥(劉廷東), 리위안차오(李源潮), 쉬차이허우, 장수성(將樹聲), 양광례(梁光烈) 등을 포함한 고위관료들이 잇따라 조전과 조화를 보냈다. 고위관료들은 왜 이 같은 행보를 보였을까? 자신들과 관련이 있어서일까? <계속>


저우샤오후이(周曉輝·중국 시사평론가)  




출처: h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2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