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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요모조모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관한 찬양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관한 찬양

사이먼 고트샥(Simon Gottschalk), 네바다 대학교


      사진=셔터스톡



현대 사회는 가속을 위한 가속을 부추기고 있다. 그 궁극은 무엇일까?


1950년대 학자들은 혁신적인 기술의 발달로 미국인들은 여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를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학자 줄리엣 쇼르는, 미국인들은 대공황 이후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고, 서구사회 다른 어떤 국가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아마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접근이 엄격해졌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장치들은 계속해서 ‘긴급’, ‘속보’, ‘즉각 발매’, ‘신속한 응답 필요’ 등 수많은 논쟁과 메시지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어 여가나 가족과 보내는 시간, 심지어 의식까지도 방해한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새로운 정보 및 통신 기술과의 상호 작용이 증가하는 사회 및 심리적 효과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책 ‘터미널 셀프, 초현대 시대의 일상생활’에서 주제를 탐구했다.


연중무휴 24시간 지속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비현실적이며 비합리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적은 없었다.


가속을 위한 가속


인간의 잠재력과 지구 건강을 향상할 수 있는 놀라운 발전 시대에, 일상생활은 왜 그렇게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불안해지는 것일까?


 이 비합리적 상태를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가속의 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독일의 비판적 이론가 하르트문트 로지에 따르면 기술 발전이 가속화됨으로써 사회제도 변화의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다.


최대효율과 신속한 시장 대응능력이 요구되는 저스트인타임 제조방식을 적용하는 공장 작업장에서, 교수가 컴퓨터 소프트웨어 교재로 학생들을 빨리 가르치려는 대학 강의실에서, 좋든 나쁘든 하나의 목표 ‘속도’를 염두에 두고 절차를 진행하는 식료품점이나 공항에서, 우리는 그것을 본다.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기 시작한 것은 2세기 전 산업혁명 때 시작해서 지금은 속도 자체가 가속화됐다. 가속은 논리적인 목적이나 합의된 근거에 따르지 않고 달리는 자체 추진력으로 별다른 저항 없이 추진되고 있어, 결국 가속을 위해 더 가속화되고 있다.


이 가속은 전체주의 힘의 기준을 교묘하게 모방한다. 


1) 그것은 피실험자의 의지와 행동에 압력을 가한다. 2) 불가피하다. 3) 널리 보급돼 있다. 4) 비판하고 싸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속도 조절


속도 조절이 되지 않는 가속은 그에 따른 결과를 초래한다.


환경 면에서 보면, 자원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보다 빠르게 자원을 낭비하고, 추출물을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개인적으로 ‘가속’은 시간과 공간을 경험할 수 없도록 한다. 일상생활에 접근하는 방식을 악화하고,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변형시키며, 안정된 자신감을 침식한다. 그것은 연속체의 한쪽 끝에서는 연소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우울증을 유발한다. 가속은 또 지속적인 집중과 비판적 평가를 방해하며, 생리학적으로도 우리 몸을 긴장시키고 생명 기능을 교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속 환경에서 자주 일하는 근로자는 그렇지 않은 근로자의 2~ 3배 더 많게 불안감과 수면 문제 등 건강 이상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환경이 가속화될 때 우리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더 빠르게 페달을 밟아야 한다. 근로자는 전보다 더 많은 이메일을 받는다. 그 숫자는 점점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수신하는 이메일이 많을수록 처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런저런 일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당신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한다.


미국 노동자의 생산성은 1973년 이래 극적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 생산성과 임금 간 격차도 급격히 증가했다. 1973년과 2016년 사이의 생산성은 73.7% 증가했지만, 시급은 겨우 12.5% 증가했다. 즉, 생산성이 시간당 임금의 6배 정도 증가했다.


가속으로 더 많이 일해서 결국 어떻게 될까? 시간이 많아질 뿐이고, 에너지 소비지출은 곧 가족, 여가, 지역 사회, 시민권, 영적 갈망 및 자기 계발과 같은 삶의 필수 활동 능력을 감소시킨다.


즉, 가속은 개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효과 관리 능력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과 '존재'


가속과 과잉의 쌍둥이 엔진에 의해 추진된 최첨단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낭비, 게으름, 야망 부족, 지루함 또는 시간 ‘낭비’로 간주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광고는 언제나 일할 수 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인간의 존재를 도구화한다.


여러 연구와 많은 정신적, 철학적 시스템은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단순한 반성과 묵상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몸과 정신 건강, 개인 성장에 필수적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비생산성을 동일시하는 것은 생산성에 대한 근시적인 이해를 나타낸다. 사실, 심리학 연구는 창의력과 혁신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며, 한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 새로운 통찰력, 발명 또는 멜로디를 개발할 수 있다고 한다.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은 사과나무 아래 앉아 중력의 법칙을 이해했다는 전설이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욕조에서 부력의 이완 법칙을 발견했고, 앨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사무실에서 몇 시간 동안 우주를 응시했다고 잘 알려져 있다.


학문적인 안식년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탐색하려면 정신을 쉬게 해야 한다는 데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그저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행복에 중요하다.


관건은 둘 사이의 균형


페달에서 발을 떼기


더 빠른 생존 속도에서 갑자기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아마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첫 번째 단계는 감속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쉬운 방법의 하나는 적어도 우리를 인터넷에 연결하는 모든 기술적 장치를 끄고, 적어도 잠깐은 그렇게 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덴마크 연구원들이 발견했는데, 페이스북 연결을 딱 일주일 끊은 학생들이 삶의 만족도와 긍정적 감정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다고 한다. 또 다른 실험에서, 자연 속으로 여행했던 신경과학자들은 인지 능력이 향상했다고 한다.


다양한 사회운동에서 속도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슬로우 푸드 운동은 패스트푸드 및 공장형 축산을 거부함으로써 일종 감속 방식을 옹호하는 풀뿌리 운동이다.


우리가 경쟁하는 동안, 정신없이 바쁜 삶 뒤에 숨겨진 이유를 심각하게 검토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매우 바쁜 사람들이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한다고 잘못 추측했다.


대중 매체와 기업 문화에 휩쓸리는 분주함에 대한 믿음은, 우리 사회의 대부분 사람이 정의하는 ‘좋은 삶’과 평온의 힘과 덕을 칭송하는 동양철학의 교리 양쪽에 모순된다.


프랑스의 철학자 앨버트 카뮈 (Albert Camus)가 잘 표현한 것 같다. ‘게으름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치명적이다.’


사이먼 고트샥은 라스베이거스 네바다 대학 사회학 교수다. 이 기사는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실렸다.



출처: h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8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