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 광장에 나타난 ‘6.4’원혼
톈안먼 광장에 나타난 ‘6.4’원혼
1989년 6월 4일, 중국공산당은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수많은 학생을 학살했다.
내가 서술하려는 것은 6.4가 벌어진 이듬해인 1990년에 벌어진 일이다. 나는 이 일을 톈야(天涯) 사이트에 발표한 적이 있지만 발표문은 이내 사이트에서 삭제 당했다. 하지만 나는 6.4를 겪은 세대는 이 일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중국이라는 무신론 국가에서 나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중국을 모욕하는 내용이라고 공격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그저 그들이 “나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음을 전해주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6.4가 지난 지 20년도 더 된 오늘에야 이 말을 다시 하는 이유는, 당연히 나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자기 정권 유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싫어하는 저 수치를 모르는 도살자와 협잡꾼들이 두려워서였다.
원래 1989년 6월 1일은 6.1국제어린이날 경축행사가 있을 예정이었지만, 국내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열리지 못했다. 국제어린이날에는 국가 지도자가 어린이와 어울리며 어린이 명절을 경축하기 마련이었다. 이 행사는 6.4 이듬해인 1990년에 ‘톈안먼 광장을 어린이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나라의 제의가 있은 후 재개될 수 있었다.
그 해 나는 댄스팀의 일원으로 광장에 갔다. 아침 국기 게양식 전부터 우리는 줄을 맞추어 그곳에서 지도자들을 기다렸다.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지도자들이 톈안먼의 성루에 나왔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뉘어 교대로 춤을 추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는 광장 서쪽 나무그늘 아래에서 교대로 휴식을 취하면서, 학우들의 책가방이나 옷 등을 봐주었다. 쉬는 애들은 모두 나무그늘에 와 있었다. 시간은 2시를 훨씬 지났는데도 햇살이 매우 강했다. 나는 간이 화장실 앞쪽에서 단짝과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날이 어두워졌다. 우리는 나무 꼬챙이로 땅바닥을 긁으며 놀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발 앞의 바닥이 서서히 붉게 물들었다. 처음에는 연하던 것이 점점 더 짙어졌다. 나는 단짝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다. 그녀는 핏자국 같다고 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광장 주변을 둘러봤다. 방금까지도 깨끗하던 사각 벽돌과 시멘트 타일에 핏자국이 나타난 것이 보였다. 한 장 한 장 살펴봐도 보이는 곳은 모두 핏자국이 있었다.(나는 광장 중간의 벽돌에도 핏자국이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핏자국이 생겼을까? 의문이 드는 순간 우리 둘은 동시에 광장 중간에서 온 몸이 피투성이인 사람들이 하나씩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어떤 사람은 코에 피가 묻었고, 어떤 사람의 얼굴 반쪽 전부에 검붉은 핏자국이 있었다. 광장 중간에서 우리 쪽과 가깝게 서있던 사람이 멍한 얼굴로 우리를 보다가 비틀거리면서 걸어왔다. 그 때 나는 좀 무서워서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의 돌멩이만 만지작거렸다. 단짝은 겁에 질려 화장실 뒤로 도망쳤다. 그 애는 나도 함께 화장실 뒤로 가자고 했지만, 나는 냄새가 날거라는 생각에 가기가 싫었다. 그냥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그냥 지나가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내가 흙바닥에서 돌멩이를 뽑으며 모르는 척 하고 있을 때, 왼쪽 위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우리 집 아니?” 그 목소리는 음울하고도 느렸다. 내가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그 사람은 흰 셔츠를 입었는데 소매는 반 정도 걷어 올렸다. 아래는 짙은 남색 바지에 흰 운동화를 신었다.
그의 온 몸은 피에 절어 있었다. 얼굴에서도 코에서도 피가 나오면서 굳고 있었다. 나는 겁이 나서 고개를 숙였다. 그는 또 물었다. “나는 왕타오XX(王涛XX)(많은 시간이 흘러서 그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 우리 집을 아니?” 나는 약간 화를 내며 그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모르는데 어떻게 당신 집을 내가 알아요?” “너 나를 집에 데려다 줄 수 있니?” 그 사람은 내 말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했다. 나는 앉아서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면서 말했다. “코피나요. 손수건 줄테니 닦으세요.” 내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주려고 하는데 그는 여전히 내가 하는 말을 못 들은 그 음울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곳에서 죽었단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손수건을 꺼내서 돌아섰을 때 그는 나를 등지고 광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의 뒤통수에 커다란 구멍 두 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구멍에서 흘러나온 많은 피가 그의 온 머리와 셔츠, 바지를 다 적셨다. 피는 지금은 거의 말랐는지 중심은 검은색이었고 변두리에 붉은 색과 노란색이 있었다.
나는 손수건을 움켜쥔 채 그가 비틀거리며 광장 중앙으로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광장 중앙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광장의 동 서 양쪽에서도 온 몸이 피투성이인 수많은 사람이 비틀비틀 광장 중앙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때가 바로 지도자들이 톈안먼 성루에서 사람들 속으로 걸어올 때였다. 장쩌민과 수행 인원이 광장의 중간에 있었고, 주위에는 생화를 들고 붉은 넥타이를 든 어린이들이 빼곡히 둘러쌌다. 그런데 온 몸이 피투성인 사람들은 바로 그 사람무리 중간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전체 상황은 약 15분~20분 걸린 것 같다(시계를 보지 않아 구체적으로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딱히 알 수 없지만 틀림없이 비교적 긴 시간이 걸렸다) 그 다음 그들은 아이들 무리 속에서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사람들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이 때 뒤로 단짝이 와서 물었다. “너 보았니?” “응” 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 “너도 봤어?” 그녀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그와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물었고 나는 그대로 알려 주었다. 하지만 뜻밖에 그녀는 이 일을 바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불러 물어봤고 나는 내가 본 상황을 다시 이야기 했다. 그리고 지금 바닥에 왜 그렇게 피가 많은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무엇인가를 몹시 두려워하면서 급히 대답했다. “내 눈엔 아무것도 안보인다. 아무것도! 앞으로 이 일을 다시는 말하지 말아라!”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그녀는 내가 그 말을 다시는 못하게 하려고 매우 위협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를 탓할 일도 아님을 지금은 안다.
조금 후, 한 친구가 광장 가운데서 도망치듯 몸을 빼 나와서는 내게 말했다. “너 담이 꽤 크구나, 그런 사람과 말을 다 해?”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너도 봤잖아? 이거 봐! 지금도 땅에 피가 아주 많잖아! 이런데도 선생님은 아무것도 안보인데!” 나는 아주 불만스럽게 말했다. 친구가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말하지 말라고 했으면 말하지 말아, 아마 많은 사람이 동시에 코피를 흘렸나본데, 오늘 왜 코피를 흘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지?” 그 역시 이상하다는 생각에 머리를 갸웃거렸다.
지금은 당시에 왜 그렇게 많은 피투성이 사람이 나타났는지, 그리고 선생님이 왜 그렇게 무서워했는지도 안다. 아마 아이들의 눈이 비교적 깨끗하기에 6월 1일에 광장에 모인 아이들에게 뭔가를 좀 알리려 했을 것이다. 6.4 학살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죽었는데 그들의 영혼은 아직까지도 가야할 곳으로 가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도 그들을 인도해주거나 보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죽은 자리를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가족이 마땅히 그곳에 가서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들을 하늘로 되돌려 보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아이들 무리 속에서 사라지면서 아이들의 몸에 붙지나 않았는지 걱정도 된다. (당시 원혼과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여기서는 다 말할 수가 없다. 6.4때 죽은 이들의 가족에게는 매우 미안한 일이다. 용서를 구한다.)
출처: http://www.ntdtv.kr/culture-education/kaleidoscope/%ED%86%88%EC%95%88%EB%A8%BC-%EA%B4%91%EC%9E%A5%EC%97%90-%EB%82%98%ED%83%80%EB%82%9C-6-4%EC%9B%90%ED%98%BC.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