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본연의 음악을 찾아서: 핀란드 싱어 안나 코코넨 이야기
“조용히 마음 어루만지는 노래 하고파… 소신 지키는 과정에 기적 만나기도”
예술가는 자신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좌절을 겪기도 한다. 이때 지혜롭게 소신을 지키려면 선량한 마음이 필수다. 정신적 가치와 연관되는 예술은 이 속에서 기적을 창출하기도 한다.
핀란드 싱어 안나 코코넨(Anna Kokkonen)은 예술가로서 보다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 착한 마음을 품어서일까. 코코넨은 타고난 미성을 핀란드 전통 선율에 더해 노래하는데, 그의 음악은 듣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뮤지션으로서 코코넨의 진정한 삶은, 자신이 정말로 자신을 믿게 된 때부터 시작됐다. 그러고 나니 자신의 앨범을
만들 결심이 섰다고 한다. (Jarkko Kokkonen)
여름이 다가오면 낮이 길어지고 세상이 밝아진다. 생명은 활기가 넘친다. 안나 코코넨의 ‘여름의 발걸음(Steps of Summer, Kesän askeleet)’은 요즘같은 계절의 행복감이 느껴지는 노래다.
“꿈꿀 수만 있다면
작은 발걸음이 모여
당신을 큰 꿈으로 이끌 거예요
태양 아래 나비들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고……”
그런데 역설적이다. 코코넨이 이 곡을 쓴 것은 밤이 스무 시간이나 되는 핀란드의 한겨울이었다. 당시 그는 계절적인 어두움만 겪은 것이 아니었다.
“함께 일하던 음반회사에서 저를 ‘상업적’인 이미지로 바꾸려 했어요. 좋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저를 촬영하는데 사진의 뉘앙스가 좋은 느낌이 아니었거든요. 순수하지 않은 의도가 느껴져 불편했습니다.”
음반회사는 뮤지션 코코넨에게 다른 이미지가 돼야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당시는 막 뮤지션 생활을 시작한 때였기 때문에 관문처럼 느껴졌어요. 그래도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너, 정말 그런 식으로 할 수 있겠어?’라고요.”
코코넨은 고통을 이기려고 마음을 바꿨다.
“저는 아주 행복한 노래를 만들어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생기 넘치는 노래를 만들며 슬픔을 치유하는 것은 멋진 일이죠. 음악은 치료제예요. 듣는 이도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코코넨은 ‘여름의 발걸음’을 직접 프로듀싱했는데, 이 곡은 라디오 핀란드에서 차트 1위에 올랐다.
“라디오에서 제가 만든 이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그게 여름이었어요.”
“당시 일은 교훈이 됐습니다. 소신에 따라 일했더니 심각해보였던 일이 제대로 풀리기 시작했거든요.”
코코넨은 직관력이 강한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의 길을 걸을 용기가 있게 된 것은 힘든 시기를 겪고 나서였다. 그 과정에서 신기한 일도 경험했다.
노래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코코넨은 예술가의 길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부모님은 제가 말도 하기 전부터 노래를 불렀다고 하셨어요. 스스로 멜로디를 만들어 부르고요. 그것이 제 인생이 된 것이예요.”
초등학교에서 배운 바이올린이 코코넨의 첫 정규 음악교육이었다.
“실제로 요즘 제 음악에서 클래식 바이올린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하모니와 다성음악을 다룰 때 도움이 되죠.”
코코넨은 10대 때 바이올린에서 전자기타로 바꾼 뒤 작사와 노래를 시작했다. 당시 록 음악이 인기였기에 록밴드를 몇 곳 가보기도 했지만, 실은 포크 음악이 하고 싶었다.
“당시 음악을 하고 싶던 저는 미리부터 타협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저랑 이런 음악을 연주해보시면 어때요?’라고 물을 용기도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이름모를 누군가와 마주치고 나서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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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넨은 여러 악기와 사운드를 더해 핀란드 전통 멜로디를 더 풍부하게 하고 있다. (Janica Lönn) |
진실해지기
2006년 코코넨은 집에서 헤비메탈 곡을 쓰고 있었다. 집중이 잘 안 되던 그는 당시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에게 밖에 좀 나갔다 오라고 했다. 그런데, 숲을 산책하던 남자친구가 매우 아름다운 동작을 펼치고 있는 한 여성을 발견했다. “그는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었어요. 거기 서서 그 분이 동작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는 거예요.” 코코넨의 설명이다.
그 여성은 자신이 좀 전에 한 동작이 고대 중국의 심신수련법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 알려줬고, 남자친구는 집에 돌아와 코코넨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어머나, 그건 내가 하고 싶은 수련인데.”
“저는 파룬따파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이 말이 제 입에서 튀어나오더군요.”
코코넨은 이렇게 첫순간에 파룬따파에 관심이 갔다며 스스로 놀라운지 웃어보였다.
“그 신비로운 여성은 지금까지도 다시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 이야기가 더 신기한 것 같아요. 지금도 그분이 누구인지 몰라요.”
어쨌든 코코넨은 그날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기적처럼 좋은 일도 많이 겪었지만, 늘 수월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힘들었던 것은 제 감성적인 면과 관련있는데, 저는 예전에 지긋이 책을 보는 것이 힘들었어요." 수련의 원리를 알려주는 책 ‘전법륜’과 관련, 코코넨은 책의 가르침이 주는 지혜에 감동해서 매일같이 끈기있게 읽어갔다.
“눈물이 끊임없이 나왔어요.”
사실 코코넨은 이전에 공황장애가 심각해 약물치료가 필요할 정도였는데, 그 책을 읽어가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정신적 승화와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감동의 눈물이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나서 그런 걱정이 없어졌어요. 내면에 어떠한 안도감이 자리한 것 같아요. 다시는 마음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거예요.” 실제로 이후 더는 공황장애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수련을 계속하면서 내적인 성장과 함께 음악적 성향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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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넨은 음악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여름의 발걸음’을 썼다. 라디오 핀란드에서 히트곡이 된 첫 작품이다. (Jarkko Kokkonen) |
“저는 예전부터 가슴 속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씨앗을 간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작은 씨앗을 끝까지 키워낼 용기는 없었어요. 내면의 목소리를 확고하게 믿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코코넨은 오래 전부터 록 음악이 자신의 목소리에는 많이 거칠게 느껴져 클래식 발성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 싶었어요. 건강하고 정확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보컬 선생님은 코코넨에게 목소리를 가꾸는 방법, 목소리를 받쳐줄 수 있게 몸을 쓰는 방법을 지도했다.
“이후 목소리가 좀 더 제가 원하던 쪽으로 바뀌었어요. 보다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목소리였죠. 스스로 제 음악이 예전보다 아름답게 느껴져 기분도 훨씬 좋았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지 5년쯤 됐을 때, 코코넨은 이제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크게 도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좀 대담해졌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눈치 봐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제가 좋다고 여기는 음악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게 됐습니다. 마음이 진정 원하는 일을 할 용기가 정말로 생겨났습니다.”
코코넨은 곡을 쓰려고 앉을 때 히트곡을 쓰겠다는 생각이 없다고 한다. 오롯이 자신과 잘 어울리는 좋은 음악, 뮤지션 코코넨의 기준에 맞는 곡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
“그 때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 같아요. 라디오도 명성도 없는, 단지 이 순간만 있을 뿐이죠. 그 때 음악은 저를 더 큰 무언가와 연결해주는 것 같아요.”
나의 음악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코코넨이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 모두 어디서 왔을까요?”
코코넨과 함께하는 뮤지션들은 코코넨에 대한 신뢰가 깊다. 코코넨이 전형적인 핀란드 민속 음악을 초월한 소리를 만드는 데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코코넨은 오케스트라처럼 웅장한 소리를 선호하는데, 코코넨의 라이트한 고음이 전통적인 악기 편성과 어우러지면 보다 풍부하고 심금을 울리는 멜로디로 업그레이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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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넨은 명상에 잠길 때 세상이 더 평화롭게 느껴진다고 한다. 명상은 음악과 삶을 조화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Jarkko Kokkonen) |
그는 첼로나 바이올린 등 현악기를 좋아해 밴드에서 연주하기도 하는데, 하프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하프는 분명 천상에서 내려왔을 것 같아요. 참 아름다워요. 그렇지 않아요? 하프 소리를 들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귀가 기울여지거든요.”
지난 2년간 새로운 멤버들과 연습해온 코코넨은 첫 앨범 레코딩을 마쳤다. 음반회사의 입맛에 맞춰 좋지 않은 이미지로 자신을 노출하는 것을 거부했기에,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큰 걸음을 내딛었다. 자비를 들여 앨범을 제작한 것이다.
돈과 명성에 대한 갈망을 접었을 때
앨범 제작 후 마케팅 차원에서 여러 음반회사에 음반을 보냈는데, 핀란드의 한 음반회사가 코코넨에게 라디오에 출연하라며 제작비도 역으로 돌려줬다. 게다가 이후 2, 3집 제작까지 지원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랬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구하는 것이 없을 때 기적이 찾아오더군요. 자비로 첫 앨범을 만들기로 하면서 제 머릿속은 심플했어요. ‘그래, 이 돈으로 하면 되지.’ 그런데 도리어 갑자기 그 돈을 돌려받게 됐습니다.”
돈과 명성에 대한 생각이 없었더니 ‘축복’이 계속됐다. 코코넨의 노래는 라디오에서 방송을 타면서 라디오 핀란드의 ‘금주 최다 방송 곡’에 두 차례 올랐다.
‘내 동생’(My brother, Veljeni)은 2014년 라디오에서 방송된 첫 곡인데 요새도 방송되고 있다. 여러 악기의 음색이 조화된 신비스런 이 곡은 연민이 가득하다.
코코넨 음악은 멜로디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하다. 곡의 주제와 가사는 타인을 돕고 진리를 추구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내 동생'은 잃어버린 남동생을 찾아 헤매는 누나의 모습을 담았다.
“누군가와 헤어져 혼자가 된 사람은 외로움을 못 이겨 자포자기하기 쉬워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요. 그렇게 계속 혼자 있다가 어리석은 행동을 할지도 모르고요. 이런 사람들을 걱정하고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음 곡도 코코넨의 노래 중 하나다. 역시나 연민의 마음이 담겼다.
금빛 날개로 대지를 어루만지고
우리 함께 촛불을 모으자
내일 아침 해 뜨면
눈물의 흔적 사라지리
“곡 금빛 대지(the Golden Land, Kultainen maa)는 이중적 의미가 담겼어요. 제 마음속에서 중국은 전통문화의 보고입니다. 공산 정권 이후 중국의 상황이 많이 나빠지긴 했지만요.”
코코넨은 그간 공산주의 정권이 중국 전통문화와 가치를 파괴하기 위해 기를 써온 상황을 설명했다. 1960년대에 문화대혁명으로 지식인을 탄압하고 1980년대에 민주 인사들을 억압해온 공산 정권은 1999년부터는 파룬따파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코코넨은 이후 근 20년간 멈추지 않는 박해에 주의를 기울여주기를 희망했다.
“어둠 속에서 한 명 한 명씩 촛불을 듭니다.” 노래 가사는 계속된다.
“많고 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었을 때 온 대지가 황금빛으로 빛납니다. 한 사람이 진실을 알게 될 때, 그것은 바로 촛불을 켜드는 것과 같습니다.”
코코넨의 마음이 담긴 음악은 그가 지키고픈 본연의 미와 조화돼 진정성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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