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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버둥 치는 하이난 성, 자유무역지구 설치로 국면 전환 하나

발버둥 치는 하이난 성, 자유무역지구 설치로 국면 전환 하나


    최근 중국 당국은 하이난(海南) 성 전역에 걸쳐 ‘자유무역시험지구’와 ‘자유무역항’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Getty Images)



최근 중국 당국은 하이난(海南) 성 전역에 걸쳐 ‘자유무역시험지구’와 ‘자유무역항’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해당 지역의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는 한편, 과거 30년 동안 하이난 성에서 추진된 경제 정책이 대부분 실패했다는 전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하이난 섬의 지역 경제 활성화


13일 중국 당국이 하이난 섬 전역을 포괄하는 대규모 개발 계획을 공표했다. 당국은 14일 ‘하이난의 전면적인 개혁·개방에 관한 국무원(최고 행정기관) 지도 의견’을 통해 구체적인 청사진을 발표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까지 하이난 자유무역시범지구 건설을 진전시켜 국제 개방도를 큰 폭으로 높인다. 또한 2025년까지 하이난 자유무역 제도의 기초를 닦아 일류 수준의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한다. 이후 2035년까지 하이난 자유무역항 제도의 체계적인 운용 모델을 더욱 성숙시키고 비즈니스 환경을 세계 일류 수준으로 향상시킨다.


이어 당국은 하이난 섬에서 경마와 스포츠 복권 등의 산업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중국 당국은 현재 하이난 섬의 카지노 산업 규제를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과거에도 하이난 섬의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한 정책을 실시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80년대 수입 차 전매 붐


중국 공산당 정권이 출범한 이후 하이난 섬은 오랫동안 광둥(廣東)성 내의 행정구 중 하나였다. 하이난 섬의 주요 산업은 천연 고무 생산이었다.


1984년 덩샤오핑(鄧小平)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는 중국 남부를 시찰하던 중 “향후 20년 동안 하이난의 경제를 대만 수준까지 발전시킬 수 있다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해당 발언 이후 국무원은 ‘하이난 섬 발전 건설의 가속화에 관한 문제 논의 개요’를 발표하며 하이난 지역에서의 외화 운용, 농업과 공업 생산에 필요한 물자 및 자동차, 텔레비전, 냉장고 등의 소모품 수입을 허용했다. 그러나 중앙 정부는 수입한 물자의 사용과 판매에 제한선을 설정했다.


레이유(雷宇) 당시 하이난 시장은 해외에서 수입한 자동차를 섬 밖에 판매하는 등 규제 완화를 이용해 일확천금을 거두려 했다. 이로 인해 당시 하이난 섬의 주민 대부분과 하이난 섬에 주둔하는 해군조차도 자동차 전매에 몸을 던질 정도로 일대 붐이 발생했다.


중국 당국은 “레이유의 행정이 국내의 시장 질서를 문란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하며 그를 광둥성 화현(花県)으로 좌천시켰다. 최초의 하이난 섬 경제 활성화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88년 4월 당국은 하이난 섬을 광둥 성에서 분리한 직후 ‘하이난 성(省)’을 새로 설립했다. 동시에 성 전역을 경제 특구로 지정했다.


홍콩 언론의 과거 보도에 따르면 89년 베이징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주화 운동인 ‘6·4 톈안먼 사건’의 여파로 하이난 성 상부 인사가 숙청됐고, 이로 인해 하이난 성 현지의 경제 성장은 또 다시 파행됐다.


량샹(梁湘) 당시 하이난 성 성장(省長)은 학생 민주화 운동에 공감한 자오쯔양(趙紫陽) 당시 국무원 총리를 지지했다. 학생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방안에 반대한 자오쯔양은 곧 실각했고, 이후 중국 당국은 경제 범죄 혐의를 이유로 량샹을 면직했다.


1990년 량샹의 실각 직후 하이난 성 쉬스제(許士傑) 당위원회 서기 또한 면직됐다. 이후 덩홍쉰(鄧鴻勛) 장쑤(江蘇) 성 당위원회 부서기가 후임자로 부임했다.


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


88년 이후 중국 당국은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하이난 섬의 토지 개발을 가속화했다. 당시 하이난 섬의 경제 규모는 중국 내 GDP(국내총생산)의 0.5%에 불과했으며 대부분의 농경지가 방치된 상황이었다.


토지 개발을 급속하게 추진한 결과 91년부터 부동산 시장 과열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이커우(海口) 시와 싼야(三亜) 시의 주택 가격이 급등했으며, 그 중 하이커우 시 주택 가격은 91년 1평방미터 당 1400위안(약 23만 8000원)에서 93년 7500위안(약 127만 7000원)으로 5배 이상 폭등했다.


92년 하이난 성의 GDP성장률은 마침내 41.5%에 도달했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는 상황을 우려한 중국 당국은 93년 6월 부동산 억제 정책을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당국은 하이난 성 내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를 줄이고 부동산 기업의 주식시장 상장 및 부동산 시장으로의 은행 자금 유입 등을 엄격히 규제하기 시작했다.


해당 정책이 도입된 직후 2만개 이상의 부동산 관련 기업이 자금 사정 악화로 인해 잇달아 파산했다. 공사가 중단된 건물이 600채 이상 방치됐다. 섬 내의 경기가 급격히 냉각됐다.


당국의 부동산 정책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하이난 성의 경제는 97년 아시아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인해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이난 성 정부 고층의 내분


한편, 하이난 성 경제 발전에 장애가 된 원인 중 하나는 성 정부 고위층의 내분에 있다. 과거 30년 동안 하이난 섬의 당서기와 성장은 각각 10명과 9명으로, 교체 간격이 매우 짧았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90년부터 93년까지 당서기를 지낸 덩홍쉰과 89년부터 93년까지 하이난 성장을 역임한 류젠펑(劉剣峰)은 서로 ‘물과 기름의 관계’였다. 두 사람은 상대를 타도하기 위해 도청기를 설치하는 행위도 저질렀으며, 이 사실을 접수한 베이징 중앙 당국은 두 사람을 함께 파면했다. 내분을 이유로 당서기 인사가 자주 교체되는 상황은 이후에도 되풀이됐고, 이는 하이난 성 정부의 ‘특색’인 마냥 자리 잡았다.


현재 류츠구이(劉賜貴) 당서기 선샤오밍(沈暁明) 성장은 모두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전 부하다.


한편, 하이난 성 당국의 고위 공직자 중에는 파룬궁(법륜공·法輪功)에 대한 장쩌민(江澤民)파의 진압 정책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인사가 있다.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박해 정보를 발신하는 ‘밍후이(明慧)’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두칭린(杜青林·98~01년), 바이커밍(白克明·01~02년), 뤄바오밍(羅保銘·11년~17년) 등의 하이난 성 지도층이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박해를 지시했다.


새로운 경제 활성화 정책 성공하나


미중 무역 마찰이 심화됨에 따라 중국 당국은 10일 국제 사회를 향해 ‘새로운 시장 개방’ 및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를 약속했고, 더불어 ‘하이난 섬 자유무역지구 건설’을 언급했다.


리린이(李林一) 시사평론가는 “중국 당국이 시장 경제에 대한 간섭을 유지하고 공정한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하이난 섬에 자유무역지구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이난 섬 뿐만 아니라 중국내 각지의 경제 정책은 공산당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유지되고 있다. 중국 당국이 이러한 본질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하이난 섬의 자유무역지구는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하이난 섬에 자유무역지구를 설치하겠다는 발표 이후 각지로부터 투기 자금이 유입되면서 불과 1주일 동안 하이난 성의 주택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섬 서북부에 있는 청마이(澄邁)현 등 교외 지역에서도 일부 주택 물량이 일주일 동안 1평방미터 당 약 1000~3000위안(약 17만원~51만원) 올랐다.


22일 하이난 성 정부는 부가적인 부동산 가격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외부인 대상 주택 구매 제한 정책을 실시했다.


3월 말 하이난 성 당국은 주택 구입 이후 5년 이내의 매각을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현재 하이난 섬에서는 중국내에서 가장 혹독한 부동산 규제가 실시되고 있다.



출처: h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5395